재중 엘르
perfect day
완벽한 임무 수행은 늘 그대로인데 쉽사리 평온할 수 없는 한남자. 언뜻 평범해 보이는 남자의 일상은 무미건조해진 눈빛만큼이나 먹먹하다. JYJ 재중이 참여한 무비스틸 네 번째 이야기.
서정적인 킬러의 하루.
Making scenes, 그리고 조금 더 뒷 이야기
장충동의 서정적 킬러 J 씨는 하마터면 적도를 건너 한여름의 땀내 나는 임무를 수행하거나 미국 어느 섬에서 오픈카로 질주하며 버라이어티하게 총탄을 난발했을지도 모른다. 싱가포르의 콧대 높은 건물 사이로 타깃을 주시할뻔했던 이 남자가 결국 칩거하게 된 곳은 장충동의 모 호텔. JYJ 재중이 스펙터클한 무드의 킬러로 변신할 뻔한 로테이션이 이처럼 다양했다는 얘기다. 어쩌면 차분한 오늘의 여정과 색을 달리할 수 있었던 사연을 뒤로하고 체감온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1월의 어느 날을 기억해 본다.
"이모요? 저희 넷째 누나랑 동갑이신데요.""그래도 저희 첫째 누나보다 적어요." '아이돌 인기지수 불감증'의 이모뻘 메인 스태프들, 즉 노장을 자처하는 이들을 한 순간에 누나로 둔갑시킨 훈훈하고도 왠지 뒤가 '켕기던' 이 날의 촬영장. 이곳이 오랜만에 번개 모임을 가진 서클 분위기가 된 것은 새침할 것 같은 재중이 가진 의외의 익살 때문이기도, NG가 나는 대부분의 상황이 섹슈얼한 농담과 뒤섞여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국 팬들은 저에게 '국장님,국장님' 그래요. 청국장의 그 국장님이요. 절 좋아하지 않으면 저의 감추는 성격을 어떻게 알겠어요. 그건 아는 사람만 아는 얘기죠. 그 외엔 꽤 편견을 가지니까요. 말 때문에 오해가 생기는 부분도 있고 얼굴에서 차가운 느낌이 들기도 하잖아요."
마음을 내주는 사람에게 절대 거절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어쩌면 진심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통하면 표준 정량이 없는 진심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형성한다. 그 중에서도 '팬'과의 관계에 가장 익숙한 재중은 아시아 각국을 방문 할때면 '봉고차'를 수도 없이 출두시키며 교통마비를 일으키는 장본인(본인만 모르고 남들은 다 아는 얘기를 사실 확인 차 건넸다.) "아, 그건 지금도 좀 그런데! 하하, 좀 오글거리는 사실이지만. 덕분에 멤버들에게 타박을 많이 받았죠. 그래도 자국에서 사랑받는게 제일 좋죠.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팬들은 아마도 이미지나 노래, 퍼포먼스로 저에 대한 인상을 접하면서 좋은 점을 기억해 주시는 걸거예요. 개인적으론 마음이 통한 거라고도 생각하고요." 해외 진출 초기에는 자신감이 별로 없었다. 언어 장벽도 있었고, 공항에서 손도 잘 못 흔들정도로 소극적인 면이 있었으며 심지어 다른 멤버 뒤에 숨어 있기도 했었다는 고백. 하지만 어김없이 퍼포먼스를 펼칠 땐 '재중'이라는 이름 그대로 중앙을 지킨 탓에 '소통'의 열쇠를 풀 수 있었다는게 그의 이야기다.
지난해엔 일본 드라마 <솔직하지 못해서>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을 정도니 이를 증명한 셈이다. "캐릭터가 좀 의외였다는 얘길 많이 들었어요. 그런 어설픈 역할을 할 줄 몰랐던 거죠. 무대에서는 언제나 강한 이미지였으니까. 많이 고민하다가 그 동안의 이미지와는 다르게 순수한 청년이 돼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가지 억울한 건 적어도 드라마에서보다 일본어를 잘했는데 그 수준을 낮춰야 했던 거에요." 알고 보니 재벌집 아들이었다는 드라마 속 결론을 그 역시도 억지스럽게 여겼지만 일본의 유명드라마 작가 기타가와 에리코의 애정 어린 대본 덕분에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마무리된 첫 번째 연기는 백지에 가까운 상태였던 터라 오히려 쉬웠고 덕분에 자신감도 생겼지만 두 번째는 더 힘겨울 수도 있을 거란 생각. 그리하여 다시 만날 기회를 위해 연기 연습과 영어, 골프 수업등 취미나 경험 혹은 스스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배우고 있는 나날이다.
매거진 <엘르>코리아와 패션 엘르 엣티비의 이번 <무비스틸> 프로젝트를 위해 기획 단계에서 공유한 콘셉트와 신(scene) 외에 디테일한 코티가 전달된 건 불과 촬영 하루 전이었다. 스틸과 필름 작업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는 부담과 오랜만의 화보 촬영이라는 설렘의 중간쯤, 하루 전에 전달받은 콘티를 거뜬하게 소화해 낼 수 있었던 건 보이지 않는 시간 동안 투자한 노력때문인 듯 하다. 비록 '두부 피부를 위해 일찍 잠들겠다' 던 스타일리스트와의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지만 컨디션에 관계없이 상황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건 데뷔 8년 차라는 결코 적지 않은 경험의 산물일 거라는 짐작. "신인 땐 참 철이 없었구나 싶어요. 시간이 지났으니 이런 얘기도 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어릴 적엔 강하게 보이고 싶고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에 객기도 부리고 했는데 이젠 좀 더 여유로워져야겠다고 생각해요. 평소에도 쾌활하고 웃음도 많은 편이거든요."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지인들과 오래 지내다보니 거짓말 할 게 사라지더라는 스물여섯살 아시아 스타의 이야기는 그의 말대로 한 해에 한 단계씩 성장하던 걸음이 10단계는 껑충 뛰어넘은 듯 보인다. 갑자기 애늙은이가 됐냐면, 그건 또 아니다. "나태해진 신체를 보여드려 죄송스런 맘도 있는데 좋은 몸은 운동을 열심히 했을 때 이미 많이 보여드렸으니까 후회되지는 않고요. 다만 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반성의 기회였던 것 같아요." 상반신을 탈의한 욕실 촬영 후 인터뷰에서 진지함과 농담 사이를 오가던 그의 다소 코믹한 반성. 이 얘기에 마음이 놓인 건 왜일까.
JYJ의 활동과 관계된 이슈에서 비롯된 심리 상태와 '먹먹하고도 서정적인'이라는 이번 촬영 콘셉트가 잘 맞아떨어져 좋은 결과물이 기대된다던 인터뷰의 시작점. 아마도 이 부분에서 느낀 상대적인 부담감이 여전히 쾌활한 성격을 감출 수 없는 한마디에 해소된 것 같다. '각오가 뒤따른 선택'에서 가십의 중심에 선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지속 가능할 듯한 불안만이 아니라 주위를 걱정시켜야 하는 부담이 스트레스로 작용하는 것 역시. 하지만 모든 선택은 언제나 장단점의 밸런스를 꽤 균형 있게 유지시키기 마련이다. 차원이 다른 시간을 경험하는 것.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나 소중한 것들을 돌이켜볼 수 있게 하니까.
심장이 뛰는 왼쪽 가슴 위에 'Always keep the faith(항상 신념을 지켜라)'라는 타투를 아로새긴 그는 무대 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는 가수로서의 신념을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준비중이다."JYJ 월드 투어를 준비하고 있어요. 정확한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미국에 몇 주 정도 머무를 계획이고요." 서울에서 진행한 단독 콘서트의 확장 버전인 'JYJ 월드 투어'는 서울 콘서트를 연출한 제리 슬로터의 기획과 재중의 연출이 맞물리는 작업이다. 일본 혼성 그룹 TRF의 멤버 샘이 공연 연출에 참여하는 걸 보고 '하고 싶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그에겐 도전이자 시험인 무대. "공연의 흐름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게 연출가의 역할이잖아요. 모든 스태프들의 체계적인 분담이 이뤄 질 테지만 전체적인 조율과 동시에 퍼포먼스 사이사이의 음악 작곡과 편곡까지 '일당백'의 정신도 곁들이면서 준비할 예정이라 기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